영화 흥행은 이제 오락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관객이 무엇을 보러 모이고, 무엇에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는지에는 그 사회의 정서와 기준이 반영된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한국인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 비추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의 중심은 권력의 승자가 아니라, 패배했지만 정통성을 지닌 인물에 대한 연민과 존중이다. 조선의 어린 왕 단종은 혈통과 명분에서는 왕이었으나 권력에서는 패배한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숙부 세조는 결단과 정치적 수완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세조는 성공한 군주로 볼 수 있지만, 영화는 그를 영웅으로 내세우지 않고 관객의 시선을 무너진 단종에게로 돌린다.
기사에서는 이를 한국인의 정서로 설명한다. 단순한 승자보다 ‘정당한 자’에 마음을 두고, 힘으로 얻은 권력보다 도리와 명분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왕위 찬탈을 정치 사건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것이 인간 관계의 윤리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숙부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왕을 죽음으로 내모는 과정에서 관객은 권력 투쟁을 넘어 ‘인륜과 천륜의 붕괴’를 목격하게 된다고 글은 전한다.
유교적 가치로는 ‘인의예지신’의 붕괴로 표현된다. 인(사랑), 의(마땅함), 예(질서), 지(판단), 신(신뢰)이 무너질 때 공동체가 흔들린다는 설명이다. 글은 영화가 이 근본 질서가 깨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관객이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는 지점이 흥행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글은 또 다른 흥행작 ‘명량’을 함께 거론한다. ‘명량’은 외세의 침략 앞에서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로, 충과 효, 애민과 애족의 정서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왕과 사는 남자’가 내부의 윤리 붕괴를 다룬다면, ‘명량’은 외부의 위협 속에서 공동체를 지켜낸 정신을 그린다는 대비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결말처럼 보이지만, 글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하나는 무너진 도리를 애도하는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지켜낸 도리를 확인하는 승리다. 공통점은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질서, 즉 ‘사람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글은 한국인의 정서가 부당하게 무너진 것에 슬퍼하고, 정당하게 지켜낸 것에 감동하는 두 축 사이에서 형성된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글은 이 정서가 ‘홍익인간’ 이념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사회,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철학이며, 하늘·땅·인간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천지인’ 관념이 바탕에 흐른다는 해석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비극은 그 조화가 깨지는 순간으로, 권력이 도리를 압도하고 관계의 윤리가 붕괴되는 장면이 관객에게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상실감을 준다고 했다.
반대로 ‘명량’은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이야기로 제시된다. 글은 이순신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위해 싸웠고, 그 충과 효, 백성을 향한 마음이 홍익인간 정신의 구현으로 읽힌다고 적었다.
‘왕과 사는 남자’의 마지막은 화려한 결말 대신 자연으로 돌아간다. 영월 청룡포의 강물과 바람, 산과 하늘의 고요 속에서 단종의 최후가 또렷해지고, 권좌는 빼앗겼지만 인간의 도리는 끝내 빼앗기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강조된다고 글은 전한다. 글은 그 슬픔이 미움이 아니라 연민으로, 분노가 아니라 성찰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명량’에서도 전투가 끝난 뒤의 바다를 통해 고요가 그려진다. 글은 이순신이 승리했지만 기뻐하지 않고, 싸움의 목적이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데 있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장면의 바다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간을 품고, 그 위에 선 이순신은 한 개인이 아니라 충과 효, 사람을 향한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제시된다고 했다.
글은 두 영화의 결말이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고 정리한다. 하나는 무너진 인간다움에 대한 침묵의 애도이고, 다른 하나는 지켜낸 인간다움에 대한 확인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힘은 사라지지만, 도리는 남는다. 그리고 그 도리를 향한 마음, 그것이 곧 인간이며 역사다.”
* This article has been translated by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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